Q. 저는 누구나 본인에게 잘 맞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에 괴리가 생긴다고요. 희진 님이 생각하실 때 TPO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첫 번째 특징은 손에 흙을 묻혀가며 일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직접 DB나 데이터를 들춰 보면서 제품 설계와 고객을 분석하고, 더 필요하면 소스 코드까지 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동작 방식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점이 TPO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해요. PO 입장에서는 블랙박스인 것이 TPO에게는 속이 훤히 보이는 화이트박스인 거죠. 그렇게 파악한 것들을 바탕으로 개발자들과 그들의 언어로 긴밀히 소통할 수 있어요. 깊숙한 지점까지 함께 내려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잘 이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한 판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TPO가 다루는 복잡한 기술과 연계는 말이나 줄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배경지식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실력 있는 TPO는 전체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문서와 도표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이걸 SSOT(Single Source of Truth)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깨진 유리창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해요. TPO와 팀원, 혹은 프로젝트 참여자들 간의 공동의 뇌를 구축해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고 프로젝트의 안정감을 높이는 것이죠. 누군가 빠진 부분이 없도록 전체 그림을 계속 챙기고 있다는 안정감이 큰 프로젝트에서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공동의 뇌를 구축해 놓아야, 아무도 챙기지 않았던 부분을 프로젝트 참여자분들이 늦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어요.
Q. PO, PM와 비교하면 TPO/TPM 포지션을 채용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TPO/TPM 직무를 고려하고 계신 분들이 바로 이 점을 고민하기도 하시고요. TPO/TPM 포지션에 대한 국내 기업의 니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A. 빠른 실행 속도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이전과 같은 속도를 내기 힘들어지는데요. 대표적인 원인은 같은 일을 여러 팀에서 반복하는 비효율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비효율이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아 개발자의 시간을 뺏고, 더 나아가 회사 리스크까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때 TPO/TPM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토스 TPO/TPM이 처음 맡은 영역은 금융 플랫폼과 회원/인증 플랫폼이었어요. TPO/TPM은 회사에 공통으로 필요한 플랫폼을 만들고, 그 플랫폼을 여러 팀에서 함께 이용하도록 하며 일과 사업이 10배 많아져도 10~20배의 인력이 아니라, 2~3배의 인력만으로도 업무가 수행될 수 있도록 이끕니다. 따라서 1조 유니콘 기업이 10조 데카콘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포지션이 TPO/TPM이라 생각해요.
또한 기술 완성도가 성공을 좌우하는 제품을 가진 기업은 더 빠른 스테이지에 TPO/TPM이 필요해요. 토스에서는 얼굴 결제, 토스 인증서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두 가지 모두 기술 완성도는 물론 제품과 고객 이해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실력 있는 TPO/TPM이 필요한 것이죠.
Q. 앞선 질문과 반대의 결로, TPO를 ‘높은 기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제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설계와 추진을 이끄는’ 직무라고 정의한다면,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서비스를 사용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직무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직무가 우려하는 ‘AI로의 대체’와는 조금 떨어져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지원 가능한 포지션 폭이 넓지 않지만, 미래에는 더욱이 필요로 할 유망한 직무가 아닐까 하고요. TPO와 AI 관계성은 어떤가요?
A. 사실 저는 최근 AI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유효한 답변을 드리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의 생각만 말씀드릴게요. 저는 AI 시대에 가장 혜택을 볼 직군 중 하나가 TPO라고 생각해요. 보통 회사에서 하나의 전문성을 깊이 파는 장인이 대다수고, 의외로 제품과 기술 양쪽 영역에 전문성을 가진 직군은 드문데요. AI가 발전할수록 한 분야에만 노련한 장인은 AI 에이전트(Agent)로 대체될 거예요.
반면 AI 에이전트가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TPO가 AI 에이전트의 결과물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할 수 있는 제품적/기술적 피드백을 줘야 하겠죠. 그리고 AI 에이전트끼리 상호 협업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의사결정하며 AI가 가지고 있지 않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요. 결과적으로 AI 에이전트로만 꾸려진 팀이 생긴다면 그 팀의 리더는 AI를 직접 뜯어 보고 고칠 수 있는, 제품과 기술 모두에 능한 TPO가 아닐까 해요. 과거에는 열 명의 팀원이 있어야 했던 일을 미래에는 TPO 한 명이 수행하는 것이죠. 물론 AI가 더욱 발전해 TPO를 대체하는 날도 오겠지만, 그만큼의의 고차원적 사고를 하는 AI가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크기를 정의하지 않을 때 담대해지는 것
Q. 이제 희진 님이라는 인물로 들어가 이야기를 좁혀 볼게요. 꽤 많은 제 이전 동료와 지인이 토스로 이직했는데요. 너무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는 여전히 제가 토스를 특정 이미지를 통해 바라봤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더욱이 희진 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요. 일터 안에서 또 밖에서의 성격을요.
A. MBTI로 설명하면 개발자였을 때는 INTJ, TPO가 된 후로는 ENTJ가 되었어요. 직업형 E라고 보시면 되어요. MBTI 검사를 해보면 E와 I의 가운데에 있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회사에서 에너지를 활활 불태우고 주말에는 I인 아내와 소소하게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근교로 나들이 가거나, 집에서 책을 읽으며 에너지를 충전해요. 주말에 잘 쉬면 일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Q.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저는 희진 님이 ISTJ이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A. 일에서는 S지만 본연의 성향은 N에 가까워요. 엉뚱한 생각을 자주하고 아이디어를 끝도 없이 낼 수 있거든요.
Q. 마지막 질문이에요. 희진 님의 직무와 관련 없는 또 다른 꿈이 궁금해요.
A. 누군가 저에게 꿈을 물어보면 ‘우주 정복’이라고 했어요. 꿈의 크기를 한정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보다 꿈이 큰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의 꿈을 함께 이루는 것이 더욱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안정지향적이면서도 엉뚱한 면이 있어서 때로는 보수적인, 또 때로는 완전히 현실적이지 않은 꿈을 꾸기 일쑤였거든요. 직무와 관련 없는 꿈으로 좁히자면 세상과 인류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철학자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지금도 회사를 다니며 철학자의 꿈을 추구하고 있어요. 대개 철학은 세상을 등지고 혼자 깊은 사색을 통해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큰 성취를 이루고, 세상을 배우고 혁신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상과 인류의 본질을 발견하며 철학할 수 있다고 봐요.
글 박효린 원티드랩 콘텐츠 사업 개발
사진 차진영 PD
발행일 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