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디자인 패러다임이 다른 면으로 접히는 중심면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이제 AI가 가져오는 또다른 새로운 시대의 막을 바라본다. AI가 창의성을 요하는 일마저 영역을 넓히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무엇일까. 그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면면에서 그 힌트를 얻는다.
철썩이는 모든 흐름 속 디자이너가 갈 곳은
Q. 아직 세현 님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보내 주신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니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고 그 전공을 살려 지금까지 ‘글’을 뼈대로 업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세현 님 역시 디자인 학과를 수료하시고 계속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계시더라고요. 대학생 혹은 사회초년생 때 다른 진로를 고민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A.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것이 그림이었어요. 그림 그리는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대에 입학하게 되었죠. 대학교 전공은 제품 디자인이었는데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고, 저보다 잘하는 주변 친구들에게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어요. ‘내가 가진 강점을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어떤걸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람과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데 호기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본격적으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무렵 UX 개념이 국내에도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더욱 확신이 생겼어요. 그길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일하고 있고 다른 진로를 고민했던 적은 없어요.
Q. 2011년부터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신 만큼, 디자인 업계의 큰 변화들을 몸소 경험하셨을 것 같아요. 과거와 현재 사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A. 제가 2010년 최초로 스마트폰을 사용했고, 2011년 첫 직장 LG CNS에 입사했으니 스마트폰 혁명과 함께 UX를 시작한 셈인데요. 직장에서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데스크톱(Desktop) 기반의 디자인을 많이 했는데 그리 오래되지 않아 모바일 화면의 디자인 수요가 크게 증가했어요. 패러다임의 변화인 것이죠. 그 이후 10년 동안은 거의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디자인을 주로 진행했어요. 스마트폰 위주의 디자인 기조는 앞으로 당분간은 이어질 거라고 봐요. 또 하나의 변화로는 AI예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AI가 가져오는 변화는 디자인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텐데요. 지금도 하루, 일주일 단위로 새로운 소식이 쏟아져나와 따라잡기 힘들어요. 그 속도가 스마트폰 혁명 때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더욱 빠른 느낌이에요.

Q. AI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요. 언젠가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하게 될까요?A. 처음엔 회의적이었는데 AI가 창의적인 일도 점차 잘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AI가 패턴을 분석하고 특정 상황에서 가장 최적화된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이 많은 발전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있고, 미래에도 그럴 거라고 봐요. 다만 디자이너 영역이 이전보다 더욱 확장될 거예요. AI로 디자인 작업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고, 그로 인해 확보한 시간은 다른 부서와 커뮤니케이션하며 크고작은 사업 전략을 세우는 것처럼요. Q. 다시 이전 질문으로 돌아와, 디자인 업계의 변화들에 적응하기 위해 하셨던 일이 궁금해요.A. 먼저 스마트폰으로 인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iOS HIG(HIG : Human Interface Guidelines)’와 ‘Android material guide’를 열심히 봤어요. 그러한 기본적인 지식이 라인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모바일 디자인의 바이블이기 때문에 이를 잘 습득해 큰 문제는 없었죠. 반면, 애플과 구글이 서로 너무 다른 정책과 가이드를 만들어 두 환경를 아우르는 디자인을 제작하고 가이드하는 일은 어려웠어요. AI는 정보의 접점을 늘리려고 하고 있어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기는 어렵기에 주요 AI 소식을 전달해 주는 소셜 미디어 ‘엑스(X)’나 ‘스레드(Threads)’ 계정을 팔로우해 시간 날 때마다 팔로업하고 있어요. 길고 복잡한 내용을 핵심만 요약해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글을 감사히 보고 있어요. 실제로도 좋은 AI 툴들을 사용해 보려고 하고 있고요.Q. 이미 원티드 아티클 시리즈 <제품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디자이너들>에서 UX/UI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영역을 다뤘는데요. 두 직무 모두 경험하신 세현 님께도 여쭙고 싶어요. UX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권한이 이제 조금은 명확해졌을까요? 혹은 여전히 교집합이 넓은 관계일까요?A. 라인의 경우 처음에는 UI Design 직군만 존재했는데, UX 팀이 만들어지면서 UX Design까지 역할이 넓어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적절한 개념이 필요했고, 국내외 사례를 분석한 결과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직군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제품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디자이너’인데요.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적합한 직군이 아닐 수 있어요. 한 명의 디자이너가 하나의 프로덕트를 맡아 생애 주기를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문제없지만, 다수의 프로덕트에서 본인의 전문성(UX/UI/Visual)을 위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기존의 UX/UI Designer가 더 적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라인은 현재 업무 환경이 후자에 가까워 특정 경우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로 업무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본인이 조금 더 전문성이 있는 영역에서 익숙한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직무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에 영향을 받지만, 같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유하고 있는 전문성은 각자 다르며 저마다의 업무 환경에서 발휘된다고 생각해요. 
Q. 직무명이 달라도 모든 디자이너의 공통 목표는 ‘유저 경험 개선’일 텐데요. 팀원들과 함께 유저 경험을 개선시킨 프로젝트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다양한 나라에서 라인 앱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각 국가마다 송끄란(태국의 설날), 크리스마스, 할로윈 등 특정 기념일이 되면 맨 첫 번째 탭인 홈 탭에 시즈널 애니메이션 이펙트를 노출시켜 사용자에게 새로운 감성적/정서적 경험을 선사해요. 이 기능을 기프트, 쇼핑 등 다른 라인 내부 서비스와 연계하며 매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어요.
Q. 일을 하다 보면 명확한 데이터 근거(자료)가 없어도 직감으로 ‘맞다’고 강하게 느껴지는 방향이 생기는데요. 이럴 때 세현 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새로운 근거를 수집하고, 연관된 가설과 증명을 통해 관계자들을 설득하거나 우선 보류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듯해요.
A. 회사가 커지다 보니 의사결정을 내릴 때 여러 이해관계자와 합의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어요. 그래서 가능한 모든 디자인 요소에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UX 팀이 생기고 나서 이러한 경향이 강해진 것 같고, 저도 개인적으로 모든 디자인 요소에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제 의견을 관계자에게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역시 사용자 의견과 데이터에요. 우선 사용자 의견은 재작년부터 디자인 조직에 리서치 팀이 합류하며 리서치 결과를 활용하기 용이해졌어요. 리서치 팀이 결과와 인사이트를 정리해 주면, 디자인 팀이 이를 디자인에 반영하고 개발해요. 다음으로 데이터의 경우, 라인도 AB 테스트 플랫폼을 만들어 대부분의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있는데요. AB 테스트에서 나온 데이터를 토대로 디자인 요소와 기능을 판단하는 데 적극 반영하고 있어요.
Q. 최근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해 배워보고 싶은 기술(지식)이 있으신가요?
A. 저는 다행히 배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죽기 전까지 몸과 머리가 따라준다면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AI 관련 기술과 사용법, 트렌드를 공부하고 있어요. 향후에는 리더십과 인간 관계, 소프트 스킬과 관련한 주제를 배워보고 싶어요.
도래하는 AGI 시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Q. 세현 님께서는 현재 라인플러스를 포함해 두 곳의 회사 경험이 있으신데요. 두 곳 모두 6년 이상 오래 다니셨어요. 본래 한 곳에서 모든 경험을 다 경험(시도)해본 후 이동하는 편을 지향하시는지 혹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지 궁금해요.
A. 이전 회사 LG CNS를 7년 반 정도 다니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는데요. 첫 직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팀원들도, 회사 생활도 너무 따뜻했어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업무와 사회생활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제게 LG CNS 입사와 생활은 축복이었어요. 그럼에도 라인으로 옮기게 된 건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B2C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이전 회사는 보통 특정 회사의 사용자를 대상으로만 UX 디자인을 진행하다 보니, 많은 사용자 풀을 보유한 회사에서는 어떻게 업무하는지 궁금했어요. 이전 회사에서 가능한 모든 경험을 하고 나서 새로운 경험과 환경을 찾아 이동한 거예요. 마침 라인에 저를 추천해 준 지인도 있었고요. 여러모로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 이직 텀이 짧지 않았기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하셨을 텐데요. 어떻게 정리하셨나요? 나아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중요한 점이 있다면 함께 말씀 부탁드려요.
A. 사실 당장 이직 생각은 없어도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했기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어요. 라인 포트폴리오를 작업했을 당시에는 라인이 글로벌 회사인 점을 고려해 이전 회사에서 진행했던 글로벌 프로젝트 위주로 구성했어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포인트에 맞춰 모바일 환경의 프로젝트를 다수 넣었고요. 이전 버전의 포트폴리오를 라인에 적합한 인재로 보이게끔 업데이트한 거죠. 그러한 의미에서 봤을 때 포트폴리오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지원하는 회사에 맞게, 면접관 입장에서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위주로 구성하는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지나고 면접관 입장이 되니 그때의 제 포트폴리오가 너무나도 수준 이하여서,(웃음) 저를 받아준 회사가 고맙게 느껴져요. 지금은 나름의 기준이 생겨 지원자의 생각과 스토리가 담긴 포트폴리오를 좋아합니다. 완성도를 기반으로 본인의 소개와 작업물을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짠 포트폴리오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몰입되고 기억에도 잘 남더라고요.
Q. 에디터나 마케터가 영감을 사용하는 여러 방식은 익히 알고 있는데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영감을 받고 업에 활용하는 방식은 어떤지 궁금해져요.
A. 제가 이제 실무 비율이 높지는 않기 때문에 디자인 실무와 연관된 영감을 따로 받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좋은 UI 레퍼런스를 보면 이후 참고하기 위해 저장해두고 꺼내 보는 정도는 하고 있어요. 또 저는 50% 이상을 독서에서, 나머지는 유튜브(Youtube)에서 영감을 얻고 있어요. 책은 작년부터 꾸준히 읽는 중인데요. 자기개발과 인문학, 리더십 주제의 도서를 좋아해 자주 읽어요. 더불어 최근 급격하게 유튜브에 양질의 강의와 강연이 올라와 유튜브 영상에서도 도움을 받고 있어요. 유익한 콘텐츠로 알고리즘 방향을 한 번 바꿔놓으면 비슷한 카테고리 콘텐츠가 연이어 노출되기 때문에 절로 선순환 구조가 되는 것 같아요.
Q.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나요? 저는 비유를 하자면 ‘유명 SNS 맛집’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10년, 20년 동안 한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내는 작은 동네 식당을 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울살이에 지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했던 동네 가게 간판들을 보며 묘하게 위로를 받거든요. 조금 이상한가요?
A.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현재는 AI가 기존 인간이 해오던 대다수 업무를 대체할 수 있고, 직업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올해는 그렇게 기다리고 두려워했던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 범용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다고 하고요. 그래서 저는 기존 능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AI가 할 수 없는 것, 대체하기 오래 걸릴만한 업무를 해야 하죠. 그런 방향으로 봤을 때 핵심적인 의사결정과 커뮤니케이션은 당분간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봐요. 따라서 소통과 협업 능력이 중요해질 거라고 확신해요. 이 영역은 AI가 도움은 줄 수는 있지만, 직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AI와 협업하는 건 기본이 될 것이고, 인간과는 어떤 업무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화두에 오를 거예요. 지금과 다른 세상이 곧 펼쳐질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환경이 오더라도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 달성하고 싶은 목표예요.
Q. 올해 5월 <하이파이브 2025>에서 연사로 함께하실 예정이에요. <하이파이브 2025>에서 나누실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또, 참석하시는 분들께서 무엇을 얻어가셨으면 하나요?
A. 라인은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메신저 앱으로 성장해 왔어요. 이번 강연에서는 한국에서 글로벌 메신저 앱을 디자인하며 겪은 도전과 배운 점, 그리고 각 지역 사용자에게 적합한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을 공유할 예정이에요. 문화 차이를 고려한 디자인 접근법과 현지화 전략을 중심으로 글로벌 UX 디자인의 실무적 인사이트를 얻어가실 수 있을 거예요. 나아가 현재 라인 디자인 조직에서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하는지 뉴스레터를 통해 전하고 있는데요. 이 뉴스레터를 소개하는 기회도 될 것 같네요.
글 박효린 콘텐츠 사업 개발
사진 차진영 PD
발행일 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