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그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시리즈의 2화입니다. 전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에서는 이노션 최원준 카피의 '패딩을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와 N.THING 정희연 이사의 '농업을 브랜딩 하다' 강연을 소개했습니다. ( →1화 바로 가기 ) ⓒ iF Korea
* 본 아티클은 iF X Wanted Gathering Seoul 2022 디자인 토크 세션의 내용을 에디터가 재구성한 글입니다.
Session 3.
이승민 · 김다슬 · 신동준 비즈니스캔버스 디자이너 | 한국에서 SaaS 스타트업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신동준 비즈니스캔버스 디자이너 ⓒ iF Korea* 세션에 참여해 주신 세 분의 연사 중 신동준 디자이너의 강연을 담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타입드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프로덕트 기반의 스타트업에서 브랜딩을 한다는 것
도메인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특히 프로덕트 기반의 회사에서 브랜딩을 맡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IT 산업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면 이번 세션을 반드시 읽어보길 바란다. 신동준 브랜드 디자이너가 난관을 겪으며 얻은 인사이트를 5가지로 공유한다. SaaS 스타트업에서 브랜딩을 시작한 이유지금이야 국내 협업툴 분야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Typed(타입드)는 원래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사업 계획서 작성툴이었다. 사업 계획서 시장의 한계를 느낄 무렵, 사업 계획서 작성자의 고민과 대다수 문서 작성자의 고민이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후 문서 기반 지식 관리툴로 비즈니스가 확장됐고, 제품에 변화가 생기게 되면서 그의 고민도 시작됐다. “사업 계획서 작성툴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문서 기반 지식 관리툴로 포지셔닝을 전환해야 했습니다. 브랜딩이 필요한 시점이었죠. 프로덕트가 기능을 통해 유저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브랜드 디자이너는 기능에 대한 효용을 시청각을 비롯한 언어로 풀어서 전달한다고 생각했어요.” 
ⓒ Typed(타입드)인터뷰의 시작은 프로덕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부터본격적인 브랜딩을 시작하기 전,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부 구성원 인터뷰가 선행됐다. 그러다 그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Typer(타이퍼, 타입드 사용자를 부르는 애칭)가 좋아하는, 혹은 애용하는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가장 많이 받은 답변은 애플, 스타벅스, 그리고 노션(Notion) 순서였다. “‘우리 유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란 상상을 한 적 있습니다. 스타벅스 창가에 있는 사이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북으로 노션 작업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설문조사를 해보니 팀원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거예요. 흥미로운 결과였습니다.”SaaS 프로덕트인 만큼 소프트웨어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함께 진행됐다. 최종적으로 나온 타입드의 브랜드 콘셉트 키워드는 ‘Professional, Cool, Generous’였다. 그래픽 모티프 도출하기- Professional : 타입드는 업무 목적의 툴이다. 다양한 레퍼런스를 필요로 하는, 보다 전문성이 높은 문서를 기반으로 한다.
- Cool : 일과 트렌드에 관심 높은 워커홀릭을 모티브로 한 키워드다.
- Generous : 툴 사용 경험에 관계없이 모든 유저가 타입드에 쉽게 접근했으면 하는 의도를 담았다.
브랜드 콘셉트 키워드를 세 가지로 정의한 뒤 그래픽 모티프* 아이데이션을 시작했다. 먼저 타입드의 핵심인 ‘문서’와 ‘지식 관리’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잡았다. 그다음 문서는 문장부호 · A4 용지 · 여백 기호와 같은 에디터의 구성요소를, 지식 관리는 타입드만의 차별화된 포인트인 추천 시스템과 네트워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 로고 마크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첨부된 그래픽 디자인(혹은 패턴) 
ⓒ Typed(타입드)
문장 부호는 블랙, 화이트 배경에 비비드한 포인트 컬러로 나타내고, 여백을 나타내는 꺾쇠 기호를 이미지 사방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네트워크 시스템은 타입드가 제공하는 효용을 우주에 빗대어 네 가지 시각적 언어로 표현했다. 이렇게 완성한 로고는 iF 디자인 어워드 유저 인터페이스 부문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및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본상을 받게 된다.
ⓒ Typed(타입드)
SaaS 스타트업 브랜드 디자이너로 느낀 5가지
첫째, 프로덕트에 브랜드 에셋을 억지로 끼워 넣지 말자.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다 보면 ‘어떻게든 브랜딩 요소를 넣어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 수 있다. 필요한 영역에 적절히 브랜드 디자인을 녹여내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더 큰 오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동일한 색상도 UI와 BI의 해석이 다른 것처럼. 예를 들어 UI의 빨간색은 (유저가) 정보 전달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BI의 빨강은 열정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프로덕트에 따라 동일한 시각 언어라도 전혀 다른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둘째, 작은 변화들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든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확고한 브랜드 가이드를 설정하는 것은 피하자. 통일성은 최소한으로, 유연성은 최대화하는 디자인 전략이 좋다. 나도 모르는 새 제품의 방향성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 Typed(타입드)
셋째, 초기 스타트업은 브랜드 가이드라인 없이 디자이너 간의 커뮤니케이션만으로도 충분한 통일성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세세한 가이드라인 속에서 디자인을 조율하기보단, 함께 소통하며 조율해 나가자. 장기적으로 볼 때 커뮤니케이션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초기 스타트업의 제품 방향성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브랜드 디자인 관점에서 더 많은 고민과 시도가 필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디자인 방향성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넷째, 서베이(Survey)는 때로 주관식보다 객관식이 효과적이다. 새로운 단어를 갑자기 떠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지를 제시한다면 응답자가 더 쉽고 명확하게 답변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타입드의 브랜드 콘셉트 키워드 서베이를 예로 들자면, 대조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선택지에 제시했을 때 더 유용한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 Typed(타입드)
다섯째, 초기 스타트업 브랜딩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중의 관심이 아직 우리에게 쏠려있지 않을 때 우린 많은 것을 해볼 수 있다. 상상한 모든 것을 펼치며 실험하고 검증해 나가자. 그 과정에서 얻는 인사이트가 상당하다.
Session 4.
송봉규 BKID 대표 | 공예에서 하이테크까지, 사물에서 공간까지
송봉규 BKID 대표 ⓒ iF Korea
세상이 원하는 디자인은 변하기 마련
송봉규 대표가 일상 속 평범한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새롭다. 음식을 보관하는 옹기를 건축 재료로 활용해 보기도 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에 체계를 더해 디자인 관점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마치 그가 바라보는 세상엔 당연함은 없다는 듯이. 평이한 사고에서 벗어난 신선함을 맛보고 싶다면, 송봉규 디자이너의 관찰법을 따라가 보자.
ⓒ BKID
브랜딩이란 안경을 쓰고 옹기 관찰하기
2012년, 송봉규 BKID 대표는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가 주최하는 전시회 ‘설화문화전’에서 전시할 기회를 얻었다. 전시 주제가 <흙, 숨쉬다 옹기>인 만큼 ‘옹기의 재료를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옹기의 소재를 건축물 재료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건축물을 덮을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 옹기를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옹기의 모습은 장을 담그는 것인데, 이걸 하나의 모듈로 건축물의 스킨과 같은 티일로 만들려고 했어요.”
2024년 완공 예정인 <Circular Lamp> 프로젝트 ⓒ THE_SYSTEM LAB(더 시스템 랩)전시가 목적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건축물의 일부가 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김찬중 교수가 이끄는 더 시스템 랩의 <Circular Lamp>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2024년 완공 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울산 옹기마을 활성화를 위해 울산 울주군이 주최한다. 송봉규 디자이너가 옹기를 바라보는 도전적인 생각이 실현된 셈이다. 그는 전통 공예 방식인 옹기에 현대 기술을 결합해 건축 재료로 활용하며 전통을 재해석할 것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접근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는 ‘플라스틱 사용률’이라고 한다.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 실제 한국인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은 전 세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놀라움으로 끝날 일이겠지만, 송봉규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긴다. “도시를 방문했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게 조악한 플라스틱 조각이라면 실망감이 클 거예요. 도시 규격에 맞는 플라스틱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체계의 시작은 80mm 규격이었다. 평균적인 핸드 스케일 제품이 70~80mm 정도의 사이즈임을 감안하면 한 손에 잡힐 정도의 크기임을 알 수 있다. “벽돌은 80mm 폭을 가진 게 있어요. 사람 손으로 잡아야 하는, 핸드 스케일을 반영했기 때문이죠. 작은 벽돌이 하나둘 모이면 거리의 분위기를 만들고 특정한 이미지를 연출하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일상 속 플라스틱을 규격화한다는 상상을 했어요.” ⓒ BKID
작게는 접시부터, 크게는 테이블까지 다양한 사물에 접근했다. 최종 목표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중 하나인 짜장면 그릇으로 활용하는 것. 그러나 배달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단가를 낮게 책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배달음식을 시켰을 때, 세련된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이 담겨 온다면 어떨 것 같나요? 포장 용기에 쓰이는 POP(Polyolefin Plastomer)는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테이블에 올라오는 식기를 생각해 보자.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과 접시는 각기 다른 용도지만 테이블에 모여 식탁의 분위기를 만든다. 다른 재료와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 테이블 위에 세팅됐을 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송봉규 디자이너는 앞으로도 시스템 안에서 디자인 질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 말한다.


ⓒ BKID빠르게 변하는 산업 디자인에 대처하는 자세아이폰이 출시된 후 세상은 바뀌었다. 핸드폰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이 되며 수많은 앱이 모였다. 1천 개의 제품이 필요하던 시대에서 1천 개의 앱이 필요한 시대로 바뀐 것이다. 대신 다른 사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변하는 산업에 맞는 변화한 디자인이 요구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나가는 사이에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산업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필요로 할 때 BKID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러는 중이기도 하죠. BKID는 공예부터 공간 확장까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 내려고 하고 있으니까요.”아이템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송봉규 디자이너는 이제 본인의 지식과 스킬,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 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목표는 의뢰받은 집의 제품을 BKID의 디자인 제품으로 모두 채우는 것이다. 공예와 공간의 멋들어진 어울림을 만들 그날이 머지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 iF Korea 공식 블로그를 통해 더 자세한 후기를 확인해 보세요. ▶ <그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시리즈 보러 가기 CREDIT
김한나ㅣ원티드 콘텐츠 에디터발행일 2022.11.03